한국에서 근무하고 외국경험이 없으면 글로벌 마인드가 없는 꽉 막힌(?) 인물로 치부된다??

이러한 공식을 무너뜨린 한 남자를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경영 하시는분이라면 한번쯤 읽어야 할 칼럼이라고 생각하고 기고합니다^^

 석위수 - 볼보건설기계 글로벌 생산총괄 부사장

 

우리가 생각하는 글로벌 인재라면 한번 생각해보자.
외국 대학을 나오고 영어를 잘하고, 거기에 해외근무경험이 많은 사람,
이런 사람이 글로벌인재의 이미지다.
하지만 석 부사장은 국내 토종에 외국 경험도 거의 없고 사무실도 지방인 창원에 있지만 해외에서
더 알아주는 글로벌 인재다. 성주 농고와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줄곧 생산현장에서
머룰렀던 그가 과연 어떻게 글로벌 인재가 됐을까??

 

석 부사장의 글로벌 인재화는 47세 때인 98년부터 본격화됐다.
삼성 중공업에 근무하던 그의 운명은 당시 중장비 부문이 볼보로 넘어가면서 크게 바뀌게 된다.
하루아침에 외국기업에 근무하게 되고, 공식 사내 언어인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해야 할 상황이 닥친것이다.석 부사장은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하려니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데 그게 영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미련하게
공부하기로 했지요. 약간 무식한 방법이지만 영어책 20여 권을 달달 외웠지 뭡니까.
 대학생 아들을 방학때면
창원으로 불러 함께 영어를 배우기도 했지요" 라며 노력앞에서
영어는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는걸 보여 주었다.

 

현재 그의 영어 실력은 외국인 직원들과 능숙하게 대화를 하는 수준이 됐다.
그의 진가는 현장에서
더욱 빛이 난다.
볼보가 인수하던 시절 창원공장은 재고도 많았고 생산시스템도 별로였다.

99년 생산담당 이사가 되자마자 '하나가 팔리면 하나를 만든다'는
SOMO(Sell the One, Manufac-ture the One)
이 바로 그것. 

 

그결과 1300원어치에 달하던 재고가 400억원대로 줄었으며 그때를 석 부사장은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직원들은 시스템을 한꺼번에 교체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대했지만 재고를 쌓아두면
당연히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밀어붙였지요."

 

볼보그룹에서 이때부터 한국의 '작은 거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석 부사장은 또 당시 외형보다 내실에 초점을 맞추면서 국내시장의 출혈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국내 굴삭기 시장 최초로
'제값 받기 정책'을펼쳤으며 그 역량을 인정받은것은 독일 공장이였다.
"독일 공장도 예전 창원공장 처럼 효율성이 매우 떨어져 있어서 생산기간
 단축,조립,효율성 제고,부품 제고량 축소등
창원식 경영시스템을 도입할것을 권고 했지요.
처음에는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었으나 무려 5년간 독일 공장 사람들을
설득시켜서
 결과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지요"

 

볼보 본사는 석 부사장의 활약을 높이 평가해 2003년 굴삭기 부문 글로벌 생산총괄
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한국뿐만 아니라 볼보그룹 내 대륙별 생산기지인 독일 중국 미국
공장의 생산라인도 이제 그의 손안에 들어왔다.

 한국내 지방도시의 생산방식이 글로벌 표준이 된 한남자의 멋진 이야기이다.

  주위 환경에 얼마나 적응할려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걸 배웠습니다.
독일직원들을 무려 5년간 설득했던 그의 열정은 무엇일까요?
 
영어책 20권을 달달 외우게 했던 그의 꿈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이 그분의 입장이라면 5년간의 설득, 영어책 20권 외울수있나요?
 
성공은 쉬운게 아니지만 도전하고 노력해볼 만한 가치 있는 것 같습니다. - 유동현

 

::::[유똥s'log]::::
Posted by Mash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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